'사대 논란' 우암도 놀랄 노영민의 만절필동

[취재수첩] 심혈을 기울여 아부하는 대상이 중국공산당이라니

정도원 기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7.12.24 11:5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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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nited97@newdailybiz.co.kr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뒤 2011년 하반기에 언론계에 몸담았습니다. 2014년 7월부터 본지 정치부 소속으로 국회·정당에 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왕적 권력의 전횡과 중우적 직접정치의 함정을 넘어, 의회 중심으로 실질적인 대의민주주의가 구현되기를 기대합니다. 의회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3선 국회의원을 지냈던 노영민 주중대사가 신임장을 제정할 때, 베이징의 인민대회당 방명록에 "만절필동 공창미래(萬折必東 共創未來)"라 쓴 것을 두고 논란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친중사대(親中事大) 논란이 일자 노영민 대사는 SBS라디오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만절필동이라는 말은 공자가 굳은 의지를 배워야 한다며 사용한 말인데, 나중에 조선시대 사대주의자들이 사대하는 뜻으로 해석해 사용한 것"이라며 "조선시대 때 그렇게 사용됐다는 점도 알고는 있었다"고 해명했다.

출전을 놓고 보면 노영민 대사의 해명도 부분적으로는 맞다. 순자(荀子) 유좌편(宥坐篇)에 보면, 자공이 "군자가 물을 보고 느껴야 할 점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공자가 "만 번을 굽이쳐흘러도 반드시 동쪽으로 향한다(其萬折也必東)"이라며 "이는 의지로다(似志)"라고 답한다.

출전에서의 원래의 뜻은 그러했지만, 이후 신하의 임금에 대한 충성, 나아가 제후의 천자에 대한 충성으로 의미가 변용됐다.

오랑캐라 업신여기던 여진족이 세운 후금·청에게 두 번에 걸쳐 굴욕을 겪고, 특히 병자년의 호란 때에는 임금이 직접 항복하러 나아가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三拜九叩頭禮) 치욕을 당하자, 임진란 때 수십만을 동병(動兵)해 도와줬던 명나라의 은혜와 대비해 숭명사상이 더욱 심해졌다.

명나라의 직접적인 도움을 받았던 선조의 어필인 만절필동을 충북 괴산 화양계곡 바위에 모본하고, 청나라에 갔던 사신이 어렵게 몰래 구해온 명나라의 마지막 천자 숭정제의 비례부동(非禮不動)을 곁에 나란히 새겨, 우리는 언제까지나 명을 섬기고 청에 예를 다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이를 주도했던 우암 송시열은 숙종 때 사사되면서, 이 만절필동 비례부동을 새긴 화양계곡에 사당을 세워 만력제와 숭정제를 제사지낼 것을 유명(遺命)으로 남기니, 사당의 이름을 만절필동의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를 따서 만동묘(萬東廟)라 명명하게 됐다.

아무리 오랑캐가 침노해 만 번에 걸친 굴욕을 겪더라도, 우리는 명나라를 섬기겠다는 의지를 담은 사당으로, 이 시점에 오면 빼도박도 못하게 만절필동의 의미가 정해진 것이다.

사어(死語)나 다름없었던 만절필동을 노영민 대사가 하필 다시 꺼내 신임장 제정 때 인민대회당 방명록에 쓴 것은 이러한 유래를 생각하면 참으로 무릎을 치게 만드는 발상이다. 동서고금을 살펴봐도 한 나라의 대사가 부임하는 나라에 아부하기 위해 방명록 문구를 이렇게까지 고심했던 적은 없었으리라.

화양계곡에서는 만절필동이 비례부동과 함께 쓰였지만, 방명록에 비례부동이라 함께 쓰면 명분없는 사드 보복 등 무도비례한 중국 당국을 야유하는 듯한 느낌이 들 수 있으므로 빼버리고, 공창미래(共創未來)라는 대구(對句)를 만들어 쓴 것도 놀랍다. 노영민 대사의 한학(漢學) 실력을 다시 보게 되는 것이다.

공창미래(共創未來)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함께 미래를 만들어나간다", 즉 일견 한국과 중국이 함께 미래를 만들어나간다는 뜻으로 읽힌다.

하지만 공(共) 자는 중국공산당을 상징하는 문자로도 쓰인다. 중국국민당과 중국공산당이 연합전선을 구축했던 것을 국공합작(國共合作), 이후 벌어졌던 내전을 국공내전(國共內戰)이라 부르는 것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하필 공(共) 자를 골라 공창미래라 한 것은, 한시의 고급 시작법(詩作法) 중의 하나인 쌍관의(雙關義)를 구사한 회심의 한 수다.

얼핏 보기에는 "만 번 굽이쳐도 결국 동쪽으로 흐르듯 의지를 갖고 함께 미래를 만들어나가자"는 뜻처럼 읽히지만, 중국 당국자가 읽으면 "만 번 꺾여도 중국에 충성하겠다. 중국공산당이 미래를 만들어나갈 것"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금천자(今天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입이 얼마나 벙긋했을지 보지 않아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쌍관의는 우리 한시 역사에서 보면 여러 아름다운 사연이 있는 대목에서 쓰였다.

가림세고(嘉林世稿)에 보면 이웃집 여자의 남편이 칠석날 소도둑으로 몰리자, 이옥봉이 첩신비직녀(妾身非織女) 낭기시견우(郎豈是牽牛)의 시 한 수를 써 관아에 내도록 했다.

칠석날의 견우와 직녀에 빗대 "내가 직녀가 아닐진데, 어찌 낭군이 견우이겠느냐(소를 끌고 갔겠느냐)"라며, 끌 견(牽) 자와 소 우(牛) 자가 가지는 중의적 의미를 쌍관의로 활용해 항변한 것이다.

이옥봉은 억울한 사람의 누명을 풀어준다는 좋은 뜻으로 시작법을 구사했지만, 노영민 대사는 어떻게 교묘하게 중국공산당에 아부해볼까 하는 일념으로 고심을 거듭해 공(共) 자를 골라 방명록 문구를 만들었으니 그 천재적 발상에 참으로 기가 막힐 따름이다.

이러고서 문제가 되자 우암 등을 일컬어 "사대주의자들이 (만절필동을) 사대하는 뜻으로 해석해 사용했다"고 매도했다.

옛날 우암 등의 숭명사대(崇明事大)는 최소한의 명분이라도 있었다. 임진란 때 나라가 망할 지경에 이른 것을 명나라 천자 만력제가 수십만을 동병해 구원했으니, 이를 재조번방(再造藩邦)의 은혜라 했다.

명사(明史) 신종 본기에 이르기를 "전후 7년으로 잃은 병사가 수십 만, 수백만 석의 군량이 소진됐다"고 했는데, 명나라의 국력을 총동원해 조선을 도운 까닭으로 그 명나라를 정복하고 세워진 청나라의 황제 강희제가 망국의 근원을 만력제에게서 찾을 정도였다.

쳐들어온 적군에 수도를 내주고 국토 끝자락으로 천도해 망국이 임박한 것을 대병력을 보내줘 수도를 탈환토록 돕고, 또 전국토가 초토화돼 온 백성이 굶어죽게 된 것을 백여만 석의 곡식을 무상원조해 나눠줬으니 명나라에 고마워해야 할 최소한의 이유는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노영민 대사가 심혈을 기울여 아부한 중국공산당은 60여 년 전 전란 때 수십만 병력을 동원해 우리를 돕고 이후에도 곡식을 무상원조한 동맹국이 아니라, 그 동맹국과 혈전을 치뤘던 적이다. 임진란으로 따지면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게 아부하는 격이 아닌가.

충절의 고장 같은 충북을 고향으로 하는 대선배인 우암 송시열조차 지하에서 놀라 일어나 의아해 할 정도로 명분도 없고 이유도 없는 아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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